아기가 100일이 가까워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우리 아기 100일은 꽤 북적북적했겠지.
첫 손주였으니까 양가 가족들이 모였을 것 같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같이 축하해 줬을 것 같다.
백일상도 차리고 백일떡도 준비하고, 다 같이 사진도 찍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발리에 있었다.
가족들이 아기 100일을 축하하러 발리까지 오기는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100일이라고 무언가 크게 준비할 생각도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냥 사진이나 예쁘게 남겨주자고 했다.
그런데 막상 준비를 시작하고 보니 이것저것 일이 생겼고,
결국 우리 집에서 꽤나 떠들썩한 아기 100일을 보내게 됐다.
처음부터 백일잔치를 크게 할 생각은 없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자연스럽게 가족 행사가 됐을 텐데, 발리에 있으니 상황이 달랐다.
우리 가족이 모두 발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100일 하나 때문에 가족들이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렇다고 아기의 첫 100일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나가기는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남편이랑 이야기하다가
“그냥 사진이라도 예쁘게 찍어주자.”
하고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그 정도였다.
그런데 사진을 찍기로 하니까 백일떡이 생각났다.
역시 백일에는 백설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발리의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발리에서 백일떡을 주문하는 것도 미리 준비해야 했다
발리에는 내가 알고 있는 떡집이 하나 있다.
발리떡집.
한국처럼 떡집이 곳곳에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필요한 날 바로 가서 떡을 사오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미리 주문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기 100일보다 몇 주 전부터 연락을 했다.
100일 날짜를 이야기하고 백설기를 주문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속으로는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100일을 3~4일 정도 앞두고 다시 연락을 했다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100일 당일에 사장님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다는 것.
아……
이걸 어떻게 하지 싶었다.
한국이었다면 다른 떡집을 알아보면 됐을 텐데, 발리에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백일떡 하나 때문에 갑자기 일이 커졌다.
결국 남편이 난생처음 백설기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남편이 유튜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떡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방법이 없으니까 일단 해보기로 했다.
베이킹 재료를 파는 가게에 가서 떡틀을 하나 사고, 마트에서 쌀가루도 샀다.
그리고 유튜브를 보면서 백설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 결과물은 생각보다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냥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우리가 먹을 거고 사진에 조금 나오는 정도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다시 만들겠다고 했다.
결국 아기 100일 당일 아침까지 백설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든 건 생각보다 정말 예쁘게 나왔다.
나도 보고 조금 놀랐다.
우리 집에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백일떡

남편은 여기서 끝내지 않았다.
‘百’이라는 글자를 프린트해 와서 위에 올려놓고 코코아가루로 글자를 따라 그렸다.
처음에는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완성된 걸 보니까 꽤 그럴듯했다.
떡집에서 예쁘게 만들어온 백설기와는 또 달랐다.
모양도 조금 다르고, 만드는 과정도 엉성했지만,
남편이 처음 만들어서 우리 아기 100일 아침에 만든 백설기라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발리에서 떡집을 못 구해서 남편이 유튜브를 보고 직접 만든 백일떡.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우리가 발리에서 살고 있어서 생긴 에피소드였다.
한국에 있었다면 굳이 생기지 않았을 일이니까.
백일 사진은 발리 전통 콘셉트로 골랐다
떡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는 사진을 찍을 차례였다.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다가 발리에서 아기 100일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작가를 알게 됐다.
여러 가지 콘셉트가 있었는데 나는 발리 전통 콘셉트를 골랐다.
우리 아기는 한국 아기지만 발리에서 살고 있으니까,
100일 사진만큼은 발리에서 보낸 시간도 같이 담아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사진작가들이 필요한 소품이나 준비물을 가지고 온다고 해서 따로 준비할 것도 많지 않았다.
촬영하는 날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우리 집이 사진 스튜디오가 됐다.
100일 아기가 이렇게 사진을 잘 찍을 줄 몰랐다

아직 100일밖에 안 된 아기라 사실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머리도 완전히 가누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정말 잘 앉아 있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울지도 않았고, 크게 보채지도 않았다.
전통 의상을 입고 있었는데도 그냥 얌전히 있었다.
사진작가님들은 아기의 시선을 잡기 위해 정말 열심히 움직였다.
“호레호레~” 하면서 소리를 내기도 하고,
손뼉도 치고,
장난감도 흔들고,
악기 같은 것도 흔들었다.
한쪽에서는 사진을 찍고, 다른 쪽에서는 계속 아기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집 안이 점점 정신없어졌다.
아기 한 명 사진 찍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야 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사진 한 번 예쁘게 찍어주려고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우리 집 전체가 작은 백일잔치처럼 되어 있었다.
그리고 촬영 중에 아기가 오줌을 쌌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아기 몸이 파르르 떨렸다.
순간 다들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바로 알았다.
아, 오줌 쌌구나.
그 순간 다 같이 웃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가만히 있고,
어른들만 난리가 났다.
사진을 잘 찍겠다고 장난감 흔들고 박수 치고 온갖 방법을 다 써놓고는 결국 오줌 한 번에 촬영이 잠깐 멈췄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장면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다.
완벽하게 준비된 백일사진보다,
그날 실제로 우리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더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족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정말 북적거렸던 100일

그날 집에는 사진작가들뿐만 아니라 평소 집안일을 도와주는 현지 아주머니도 함께 있었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아기는 가운데 앉아 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아기의 시선을 끌고,
한쪽에서는 백일떡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인 한국의 백일잔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허전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함께하지 못하는 게 조금 다르게 느껴졌는데,
막상 그날이 되니까 우리끼리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충분히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해외에서 아기 100일을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100일이라는 게 아기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기는 자기가 100일 인지도 모르고,
왜 갑자기 이상한 옷을 입혀놓는지도 모르고,
왜 사람들이 앞에서 계속 장난감을 흔드는지도 모른다.
그냥 평소와 조금 다른 하루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달랐다.
한국에서 출산하고,
생후 35일에 다시 발리로 돌아오고,
작은 아기를 데리고 발리에서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새 100일이 됐다.
처음에는 아기 데리고 밖에 나가는 것조차 하나하나 고민했는데,
어느새 유모차를 끌고 산책도 하고,
발리에서 필요한 육아용품도 하나씩 찾아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100일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아기를 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기가 정말 100일을 살았구나.’
한국에서 가족들과 함께했다면 분명 또 다른 모습의 100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발리에서 보낸 우리 아기의 100일도 나름대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떡집 사장님이 출장 가는 바람에 남편이 처음으로 백설기를 만들고,
발리 전통 옷을 입혀 사진을 찍고,
사진 찍다가 오줌을 싸서 다 같이 웃고.
화려한 백일잔치는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이게 오히려 우리 가족다운 첫 100일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 했던 말처럼 정말 사진만 남기려고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그날의 기억까지 같이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다.
'발리에서 아이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발리 육아용품, 생후 100일까지 써보니 한국에서 가져올 것과 현지에서 살 것 (0) | 2026.09.04 |
|---|---|
| 생후 50일 아기 외출, 발리에서 처음 유모차를 끌고 나가보니 (0) | 2026.09.04 |
| 해외 육아 – 발리에서 아기 예방접종, 백신도 골라야 하는 줄 몰랐다 (1) | 2026.09.03 |
| 발리 신생아 육아용품 후기 – 100만 루피아 스윙 vs 10만 루피아 바운서 (0) | 2026.09.03 |
| 생후 1~2개월 신생아 육아 현실 (초보 엄마가 가장 헷갈린 것) (0) | 2026.04.07 |